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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4 Archives

July 9, 2004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길찾기/8800원

얼마전 인터넷에서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만화를 보았다. 어린 시절 "보물섬"에 연재되던 김수정씨의 "아기공룡둘리"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명랑만화의 대표격이었던 둘리의 캐릭터들이 20여년이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라는 상상력은 명랑만화를 순식간에 슬픈 다큐멘터리로 바꾸어 놓는다.

나는 잊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현실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것인지를. 약간의 행운으로 내가 누리고 사는 이 기득권조차, 그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겐 얼마나 아쉬운 것인지를.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하고 나면, 세상은 그리 어렵지 않아보인다. 즐거운 곳처럼 보인다. 20%의 사람들에겐.

하지만, 즐거운 건 나만의 세상일 뿐이고, 세상은 무겁고 어렵다. 내가 외면한다고 세상 전체가 즐거운 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규석의 이 단편집은 외면하고자 하는 나의 시선을 돌려놓는다. 힘세고 가진 자의 밥그릇은 손도 못대면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배를 불리는(작은만화 "밥그릇") 소위 "중산층"은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불편한 만화.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뜻이 있다.

July 20, 2004

The Complete Guide to Night and Low-Light Photography

Lee Frost 지음/AMPHOTO/40000원

야경의 매력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세상이 사진 속에 나타난다는거다. 인간의 눈이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빛에 필름의 입자들이 공명하고, 그 속에서 멋진 신세계가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야경은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든지 그 극한으로 가면 여러 한계가 나타난다. 야경은 그러한 한계들을 염두에 두고 계획하고, 실행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온다.

야경에 자신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다.

July 26, 2004

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황보석 옮김/열린책들/9500원

최근 읽은 폴 오스터의 소설은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자의식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이 소설가인 경우가 많다는 것 뿐만 아니라,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도 글을 쓰는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탁의 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소설의 제목이다. 주인공 오어는 닉 보언이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닉 보언은 실비아 맥스웰이라는 작가가 쓴 "신탁의 밤"이라는 글을 읽는다는 구조. 여기서, 3중으로 중첩된 이 스토리 구조의 출발이 "신탁", 즉 예언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폴은 글을 쓴다는 행위가 하나의 예언적 행위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하벙커에 갖힌 닉 보언의 상황은 그 글을 쓴 오어의 상황을 암시하고, 50년대에 씌여진 존의 소설이 미래에 존이 저지를 삼각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자신이 문득 떠올렸던 생각들/상상들이 어느날 눈 앞에 나타나곤 하는 경험. 물론 예언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확한건 아니지만, 그 구조와 얼개는 마치 나의 상상이 이 일을 예언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럴 때 놀라워하고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리는 반면, 작가는 그 경험을 글로 남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러한 우연(폴의 소설에서는 핵심적인 키워드다)들이 다분히 짜맞춘 듯한 느낌을 주겠지만(사실 폴의 소설들에서 등장하는 "우연"이란게 전반적으로 그렇다), 분명한 것은 폴은(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러한 우연을 사랑하고, 그 우연들에서 삶의 아이러니와 예기치 못한 스릴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능수능란한 폴의 글솜씨가 큰 힘을 발휘한다.

나에게 "미국"이 주는 몇 안되는 좋은 인상 중 하나가 바로 폴 오스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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