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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김운비 옮김/문학동네/6000원

인간의 기억은 전반적으로 모호하게,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뚜렷하게 남는다. 추억을 구성하고, 따라서 역사로 남는 것은 뚜렷한 부분인 반면, 모호한 기억들은 그저 어렴풋한 인상으로만, 대부분은 잊혀진 과거로 남을 뿐이다. 이건 개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인류의 집단적 기억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기억상실 이전의 기억을 찾아 어렴풋한 흔적들 속을 헤메던 파트릭 모디아노. 이번에는 도라 브루더라는, 아우슈비츠의 이슬로 사라진 한 유태인 소녀의 삶을 쫓는다. 문서로만 간헐적으로 남아있는 그 기억은 기억상실만큼이나 대부분 단편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호한 탐색을 통해, 작가는 도라 뿐 아니라 작가 자신, 그리고 사람들의 잊혀진 기억들을 망각의 바다에서 건져낸다.

기억은 유전된다. 물론 유전자에 각인되어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은 기록과 주변환경에 각인되어 후대로 이어진다. 모디아노의 추적이 가능했던 것도 이렇게 각인된 기억들, 그 자체로 역사가 숨쉬는 도시인 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서울은 과연 10년 전조차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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