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지음/황보석 옮김/열린책들/9500원
태초에 지구는 혼돈 상태였다고 한다. 그 안에서 핵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 하나 생겨났고, 적절한 에너지가 가해지자(아마도 천둥?), 그 핵의 주위로 다른 물질들이 모여들어 작은 세포를 이루었다. 생명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작가의 머리 속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도 비슷한 것 같다.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작가의 에너지와 결합해 책 전체를 이루는 태초의 세포가 된다. 이제 작가는 이 세포에서 출발해 주변의 이러저러한 소재들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책을 완성해간다.
이런 면에서 폴 오스터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주제를 항상 머리 속에 그리고 있으며, 하나의 세포핵이 떠올랐을 때 언제든 이들을 자양분 삼아 그것을 생명체로 성장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핵은 다음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데 아무도 그 영화를 보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