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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한겨레신문사/8500원

오랜만에 만난 재기발랄하면서도 깊이 있는 소설. 가벼움의 형식 속에, 묵직한 주제가 담겨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는 MBC 청룡 혹은 OB 베어즈의 어린이 팬클럽이었던 것 같다. 야구에 그다지 몰입하거나 한 편은 아니어서(그 때는 강원도 원주에 살고 있었는데, 프로야구 열풍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이었다) 유년의 기억 속에 매우 미미한 부분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덕분에인지, 나는 삼미라는 팀은 기억조차 못한다.

이 소설에서 삼미라는 야구팀은 "프로"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치 못한 자들을 대변한다. 프로야구사에서 패배에 관련된 기록들은 모조리 가지고 있는 팀에 만년 골찌. 그런데, 그렇다면 삼미는 정말 구제불능의 낙오자들이었나?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는다"

프로는 다르다. 칠 수 없는 공도 쳐내고 잡을 수 없는 공을 잡아낼 때 비로서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리고 그 "프로"의 이데올로기는 우리네 삶 전체로 확장된다. 우리 역시 칠 수 없는 공도 쳐내야 하고, 잡을 수 없는 공도 잡아내야 "프로"라는 말을 듣는다. 밤늦게까지 알아서 야근하고, 퇴근해서는 영어학원에 다녀야 "프로"라는 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 있다. 그렇게 프로페셔널해지면 삶이 좀 나아지는가?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아마츄어여서 쫓겨났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강박하고 있는걸까?

그는 외야로 날아온 공을 잡으러 갔다가, 한구석에 피어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공을 잡아 던지는걸 잠시 잊었다. 삶이던 야구이던, 아마츄어일 때가 가장 풍족한 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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