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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9000원

에밀 아자르, 혹은 로멩 가리. 우선 이 책은 그 내용에 앞서 저자에 얽힌 사연이 눈길을 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유명한 로멩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동일 인물이다. 평단의 반응과 독자들의 정형화된 기대에 지친 로멩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하였다. 에밀 아자르의 정체는 계속 비밀로 남았고, 로멩 가리가 권총자살을 하며 남긴 유서를 통해서야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자기 앞의 생"은 한 아랍 소년이 자신을 키워준 보모인 로자 아주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유태인인 로자 아주머니와 알제리 출신(으로 추정되는) 아랍인인 주인공 모하메드,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의 이웃들.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며, 사회의 변두리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삶과 죽음은 찾아오며, 모하메드는 그 밀려드는 "生"의 고뇌 앞에서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어딘가 "릴라는 말한다"와 유사하다. 아니, 거꾸로겠지. "릴라는 말한다"가 "자기 앞의 생"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프랑스의 게토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한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결말 역시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끝난다. "릴라는 말한다"의 저자 역시 "시몬"이라고만 알려진 익명의 작가라는 점까지. 어쩐지 에밀 아자르를 따라 한 듯한 느낌이 오는군.

어쨌든, 책 말미에 실린 소설가 조경란씨의 서평 제목에 매우 공감이 가는 책이다. "슬픈 결말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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