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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03 Archives

June 2, 2003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디디에 에리봉 지음/송태현 옮김/강/12000원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는 인류학자(민족학자?)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회고록이다. 디디에 에리봉과의 대담 형식으로 서술된 이 책은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과 함께 그를 둘러싼 20세기 중후반 프랑스 지식 사회의 모습을 폭넓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레비 스트로스 자신이 아니라, 대담자인 디디에 에리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치밀한 준비와 방대한 사전지식, 날카로운 토론정신은 이 책을 단순한 해바라기식 대담집이 아닌, 레비 스트로스라는 한 지성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비춰주는 훌륭한 회고록으로 만들고 있는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레비 스트로스의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회적 참여를 거부하고 상아탑 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호감을 일정 정도 반감시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역시 이를 인정하고, 학문의 엄격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샤르트르와 같은 참여 지성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어쨌든, "슬픈 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레비 스트로스 지침서.

June 15, 2003

남자의 탄생

전인권 지음/푸른숲/13000원

저자는 가수 전인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현재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40대 중반의 정치학자이다. 한국사회의 문화적 구조 등을 연구하던 중, 그는 한국문화의 부정적 측면들이 상당 부분 "동굴 속 황제"로 길러지는 한국 남성들로부터 기인함을 깨달았고, 자기 자신의 유년기를 반추함으로써 한국 남자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따라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일반화된 이론으로 정립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는만큼 그것을 단지 개인적인 무엇으로 치부하기도 힘들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 있어 필자의 경험은 일반적인 한국 남성들에게 공유될 수 있을만한 내용인 듯 싶다.

나보다는 한 세대 전의 인물인만큼 내가 저자의 경험에 온전히 공감하기는 사실 힘들다. 하지만 나 역시 "한국 남성"으로 키워졌고, 그가 지적하는 "동굴 속 황제"로서의 습성 역시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

물론 개인적 고백을 다소 학술적인 어휘에 기대 표현하려다보니 문학적인 즐거움은 다소 떨어진다. 중간중간 엿보이는 약간의 비약들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 하지만 이처럼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한국 남성의 성장과정을 뒤쫓아 간다는 시도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빛난다고 할 수 있다.

June 21, 2003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지음/김상훈 옮김/행복한 책읽기/11000원

"앰버 연대기"의 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SF 소설. 한마디로 강력추천!!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힌두교 신앙과 불교 신앙이다. 이주 1세대로서 과학기술을 독점하여 지상의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신"들은 각각 힌두교의 여러 신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 대항하는 주인공은 싯타르타, 불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윤회"이다. 새로운 육체로 영혼을 옮길 수 있는 "전생" 기술을 독점한 신들은, 지상의 인간들이 60세가 되면 "카르마의 심판관" 앞에서 과거의 업보를 심사받으며, 그 결과에 따라 새로 전생할 육체의 등급을 정해준다. 신을 따르는 삶을 산 자에게는 보다 나은 육체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열등학 육체나 심지어 동물의 육체를.

더 자세한 내용을 밝히는 것은 책 읽는 재미를 떨어트릴테니, 이 쯤에서 그만. 분명한 것은 SF 장르의 금자탑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소설이다라는 점이다.

June 28, 2003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9000원

에밀 아자르, 혹은 로멩 가리. 우선 이 책은 그 내용에 앞서 저자에 얽힌 사연이 눈길을 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유명한 로멩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동일 인물이다. 평단의 반응과 독자들의 정형화된 기대에 지친 로멩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하였다. 에밀 아자르의 정체는 계속 비밀로 남았고, 로멩 가리가 권총자살을 하며 남긴 유서를 통해서야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자기 앞의 생"은 한 아랍 소년이 자신을 키워준 보모인 로자 아주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유태인인 로자 아주머니와 알제리 출신(으로 추정되는) 아랍인인 주인공 모하메드,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의 이웃들.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며, 사회의 변두리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삶과 죽음은 찾아오며, 모하메드는 그 밀려드는 "生"의 고뇌 앞에서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어딘가 "릴라는 말한다"와 유사하다. 아니, 거꾸로겠지. "릴라는 말한다"가 "자기 앞의 생"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프랑스의 게토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한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결말 역시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끝난다. "릴라는 말한다"의 저자 역시 "시몬"이라고만 알려진 익명의 작가라는 점까지. 어쩐지 에밀 아자르를 따라 한 듯한 느낌이 오는군.

어쨌든, 책 말미에 실린 소설가 조경란씨의 서평 제목에 매우 공감이 가는 책이다. "슬픈 결말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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