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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03 Archives

January 3, 2003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공경희 옮김/세종서적/8500원

2002년의 마지막, 그리고 2003년의 처음을 함께한 책. 적절한 시기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행운.

물론 아직은 젊은 내가 모리 교수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탈물질주의의 주장이 상업주의에 기대어 유행처럼 팔리는 요즈음에 그러한 말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는 더욱 조심스럽다. 내가 감동을 받은 부분은 모리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부분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공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인생, 그가 살아온 자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방법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진정으로 사랑하기엔 너무 이기적이지"

맞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집중해서 타인의 말을 들어준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언제나 상대를 마주하고 앉아서도 주변을 살피고, 다른 생각을 하고.. 뭐가 그렇게 바쁜걸까. 난 왜 상대에게 온전히 나를 쏟지 못해왔을까.. 적당히 예의바른 사람인 척 하면서 결국은 자신밖에 생각치 않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이제, 올 한해를 걸어볼 목표가 하나 생긴 것 같다.

January 8, 2003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로이터 통신 지음/최정숙 옮김/미래의 창/15000원

표지를 장식한 사진은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손에 돌무더기를 움켜쥔 채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CG로 붉게 채색한 돌은 마치 팔레스타인 땅에 흐르고 있는 그들의 피를 머금고 있는 것만 같다. 사진이 주는 강렬한 메세지. 때로 한 장의 사진은 그 어떤 글이나 연설보다 강하다.

이 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취재한 로이터 통신 기자들의 글과 사진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 장에 많은 것을 응축해 넣는 보도사진과 함께, 이/팔 분쟁의 역사와 배경,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통신사 기자들다운 객관성과 날카로운 순간 포착이 돋보이는 글과 사진들은 팔레스타인의 현재에 대해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장에 매몰되다보면 역시나 그 저변의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다분히 소원해지기 마련인 것 같다. 이 책은 왜 미국이 이/팔 분쟁에 개입하는지, 미국이 왜 현재의 사태에 책임감을 느껴야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단지 유일한 강대국이어서 국제분쟁에 소명의식을 느껴야한다는 식의 유치한 해석은 물론 안 할 거라고 본다. 중동자원의 석유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미국이 어떻게 부당하게 중동의 역사에 개입해왔는지, 그들의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해줄 전략적 파트너로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지원해왔는지,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어떻게 외면해 왔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양비론에 가까운 중립이란 과연 "중립적"일까?

어쨌건, 사진은 정말 멋지다 -_-)=b

January 9, 2003

카메라로 보는 방법

임동숙 지음/눈빛/7000원

사진적 시각에 대해 전문가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산 책이나... 별로였다. 일단 너무 초급용인데다가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이 사진을 가르쳤던 사람들의 사진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서.. 뭐 안 본 것보다야 낫겠지만, 성에 별로 차지 않는 책이다.

아침 출근 버스 안에서 읽고, 퇴근 버스 안에서 읽으니 다 읽은 책. 7000원은 솔직히 너무 비싸다 -_-

January 14, 2003

꼬마 푸세의 가출

미셸 투르니에 지음/이규현 옮김/현대문학/9000원

미셸 투르니에 단편선집. 원제목은 대표단편인 "들닭"이나, 역자가(혹은 출판사가) 다소 상업적인 이유로 "꼬마 푸세의 가출"을 표제로 삼은 듯하다. 하긴, 미셸 투르니에라는 이름을 보고 책을 집어드는 독자가 얼마겠으며 게다가 "들닭"이라는 제목에 손이 가는 독자는 얼마겠는가. 그래도 투덜.

아마, 나는 이 책의 절반은 이해 못한 것 같다. 마치 보르헤스처럼. 절반만 읽은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천천히 되새김질을 해야 할 것이다. 상호 텍스트성이라.. 어느날 문득 깨닫게되는 의미의 잔치.

성경과 신화, 전설.. 이 풍부한 의미의 늪에서 무엇을 건져올릴 것인가는 작가마다 다르다. 그런데 투르니에는 그 속에서 무엇을 건져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자신만의 의미를 담군다. 신화와 전설의 형식을 차용하여 그 장소를 소설과 철학의 만남의 광장으로 꾸며놓는 재주.

당분간은 미셸 투르니에 주간으로 선포 -_-/

January 17, 2003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김화영 옮김/현대문학/15000원

이 책은 두가지 의미에서 특별하다. 한가지 이유는 사진집, 그것도 매우 마음에 드는 사진집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셸 투르니에가 그 사진들을 읽어준다는 것.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와 미셸 투르니에의 공동 작품집인 셈이다.

이 쯤 되면 예상이 되겠지만, 이 책은 사진을 읽는 좋은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색깔에 머무르는게 아니라(사실 흑백사진이기 때문에 색깔은 없다;;) 사진의 디테일을 읽어내고, 그 이면을 읽어내는 시선. 낯설게하기..라는 사진의 행위를 해석을 통해 더욱 풍부한 의미체계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을 보는 눈은 사진을 찍는 눈과 통하기 마련이다. 고갈된 나의 영감에 생명수가 되길 빌면서..

January 24, 2003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창작과 비평사/8000원

오랜만의 한국 소설. 성석제의 단편 소설집이다.

다행히, 어설픈 리얼리즘 소설(사실상 소설을 빙자한 무책임한 수필)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는 "소설적 상상력"을 보여주고는 있더라.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어딘지 모르게, 이문열(인간적으로 싫어하지만, 확실히 소설가로서의 재능은 탁월함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다.

하지만,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제외하고는 그닥 인상적인 소설은 없었다. 별 3개.

January 25, 2003

방드르디, 원시의 삶

미셸 투르니에 지음/이원복 옮김/좋은벗/7000원

미셸 투르니에의 첫 소설.

이 책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각색한 소설이다. 방드르디는 다름 아닌 금요일(Friday)를 뜻하는 프랑스어. 즉, 원작의 충실한 노예 프라이데이가 이 소설에서는 방드르디라는 이름을 가진 원주민으로 나타난다.

자, 여기서 의미심장한 차이가 발생한다. 우선 프라이데이가 아니라 방드르디라는 이름에서 오는 차이, 그리고 제목이 로빈슨이 아니라 방드르디라는 점에서 오는 차이. 사실상 그 차이가 미셸 투르니에가 디포의 고전을 각색함으로써 얻으려 한 효과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미셸 투르니에는 디포의 로빈슨 이야기가 이미 하나의 소설을 넘어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폭력적 구분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신화를 뒤틈으로써, 그 폭력적 구분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책의 중간까지는, 디포의 로빈슨과 거의 똑같다. 다만 로빈슨의 인간적 고뇌, 나태와 타락에의 유혹 등이 부각된다는 점이 다를 뿐, 무인도에 유럽 문명의 조악한 복사본을 건설하려는 로빈슨의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리고 방드르디(프라이데이)를 구해주고, 대신 그를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 여기까지는 똑같다.

하지만, 방드르디는 프라이데이가 아니다. 방드르디는 무조건적인 복종과 문화적 주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연한(?) 사고로 섬의 문명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리면서, 로빈슨과 방드르디 사이의 관계는 극적으로 변화한다. 야생 속에서 문명의 삶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뿐이었음을 깨달은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따라 야생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기 시작한 것.

이성과 비이성, 문명과 야만, 정상과 비정상. 이러한 구분들은 그 구분을 행하는 주체(담론의 생산자)의 구분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구분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그러한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것이 바로 60년대 이후 서구 지성이 몰두했던 주제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주제를 완곡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제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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