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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

짐 크레이스 지음/김석희 옮김/열린책들/8500원

사실, 현대 소설에서 '복선'은 다분히 유치한 소설적 장치가 되어버렸다. 현대의 독자들은 어지간한 복선은 재빨리 발견해 낼 정도로 숙달되어 있어, '식스센스' 정도의 반전을 제시할 자신이 없으면 어설프게 복선을 내밀 생각을 아예 말아야한다. 하지만 복선 없이 어떻게 소설을 구성할까? 미래에 대한 암시가 없다면 독자를 미래로 이끌어갈 동력을 잃어버리는게 아닐까?

이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뒤틀어 서술하는 것이다. 시간을 역행하면 미래를 암시할 필요는 사라진다. 독자는 결과를 보고 과정을 역으로 추리해 들어가야 하며, 소설가는 하나씩 베일을 벗기듯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기만 해도 서술의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은 그 전형적인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적 측면도 꽤 괜찮다. 소설의 주제는 죽음 그 자체. 살해된 부부의 이야기지만, 범죄 자체는 관심 밖이다. 중요한건 죽음이라는 것, 특히 "인간"의 죽음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과도한 리얼리즘(지나치게 detail한 시체묘사 등)은, 죽음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끔찍한 묘사 싫어하는 사람은 읽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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