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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02 Archives

August 1, 2002

동맹 속의 섹스

캐서린 문 지음/이정주 옮김/삼인/12000원

다분히 선정적인 제목과 에로틱 스릴러를 연상케하는 책표지에도 불구하고(이 때문에 들고다니면서 오해 많이 받았음 -_-) 이 책은 진지한 논문이다. 캐서린 문 이라는 재미교포 학자가 주한미군 기지 주변의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 개인적인 차원(도덕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 책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이 한미동맹관계라는 틀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고 규정지어졌는지를 분석한다. 즉, 그들의 삶은 결코 그들 개인의 선택(?)의 산물이 아니며 오히려 고도로 정치적인 판단들의 희생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여성들은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강조하는 또다른 관점은 가해-피해의 구도 속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수동적 피해자로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행위하는 행동주체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페미니즘적 주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외교적, 정치적 차원의 분석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어 중간 즈음을 넘어서면 다소 지루해지기도 한다. 분석과 보여주기를 목적으로 한 학술적인 논문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속에 주장하는 바를 조금 더 명확히 내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

August 11, 2002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발리스 듀스 지음/남도현 옮김/개마고원/9500원

데카르트부터 헤겔까지로 구분되는 근대철학에 비해 현대철학은 그 흐름을 개괄적으로 풀어내는 개설서가 극히 적다. 워낙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평가도 진행 중인 사상들이 많을 뿐더러, 매우 난해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이 책은 개략적이나마 수많은 현대사상들의 핵심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니체로부터 시작해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왠만한 유명한 개념들은 언급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잡지식 얻기엔 좋은 책.

하지만 말 그대로 개론일 뿐이고 각각의 개념들을 지나치게 짧은 분량으로 서술해 그야말로 수박 겉핧기가 될 가능성도 높다. 공부를 시작하기 앞서 방향타를 잡기 좋은 정도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으로 이해하는"이라고는 하지만 그림은 별 도움이 안 된다. -_-;

ps. 데리다 아저씨가 하는 소리는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ㅠ_ㅠ

August 14, 2002

야성이 부르는 소리

잭 런던 지음/곽영미 옮김/지식의 풍경/8500원

잭 런던을 아는가? 늑대개(White Fang)로 알고 있다면 당신은 독서광, 강철군화로 알고 있다면 당신은 전현직 운동권-_-이다. 묘하게도 이 두 소설 사이의 유사성을 찾기란 매우매우 힘들다.

이 책은 세 개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 <불을 피우기 위하여>,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 모두 잭 런던이 젊은 시절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금광을 찾아 헤메던 경험에 기반하여 쓰여져있다.(책 표지 위쪽에 "잭 런던의 클론다이크 소설"이라고 쓰여져 있음) 극한지대의 삶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특징.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어린 시절 한두번쯤은 언뜻 들었을 이야기다. 어느 부유한 판사집 개가 밀매꾼에게 잡혀 북쪽 지방의 썰매개로 팔려가고, 그 곳에서 잠자고 있던 본능을 서서히 되찾아 결국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앞 부분 읽을 때는 기억을 못 했는데, 후반부에 1000파운드 썰매 끌기 내기 부분을 보니 들었던 이야기였음이 기억났음.

<불을 피우기 위하여>는 리얼한 상황 묘사가 압권.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나름대로 흥미있는 주제 의식을 지닌 글은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 문명/야만의 구분이 보여주는 허구성과 한 쪽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근대적 사고에 대한 반성이 녹아있는 소설. 물론 다소 교훈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한다.(하지만 19세기 말 소설임을 생각하자)

August 18, 2002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윤희기 옮김/열린책들/8500원

오랜만의 폴 오스터 소설.

최근에 국내 출판되었지만 실은 87년작,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열린책들이 폴 오스터 전집이라도 기획한걸까.. 그의 옛 소설들이 하나하나 꾸준히 번역 출판되고 있다.

초기작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소설적 상상력의 힘인지... 모르고 읽었더라면 폴의 소설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꺼다. 물론 "우연"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지만.. 뭐랄까, 그에게서 느껴지는 브루클린 일상의 향기가 전혀 없다고나 할까.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린 도시 속의 인간 군상. <폐허의 도시>는 그런 면에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맥을 같이한다. 소설 속의 도시는 현실의 어느 도시, 국가는 아니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도시, 국가의 투영이 아닐까. 섬뜩한 인간 군상의 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과연 나는 그로부터 자유롭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August 20, 2002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안종주 지음/한울/12000원

필자는 보건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의약분업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한겨레신문 심의위원으로 있는 사람이다. 언론계에서 의료보건 문제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외형적인 자격은 일단 갖추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이 책은 2000년 의사 집단휴업 사태를 계기로 쓰여진 글이다. 필자는 이 책 전반을 통해 한국 의사 사회의 부도덕성과 이기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는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하면서, 의사들이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좌충우돌하며 제도 자체를 너덜너덜한 휴지조가리로 만드는 과정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의 진단은 현재의 건강보험 파탄과 어정쩡한 의약분업은 1차적으로는 의사들, 2차적으로는 의사들에게 굴복한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소 매너리즘 경향을 보이는 문체("올해를 의료개혁 원년의 해로 만들어보는게 어떨까?" 같은 신문칼럼 형식의 마무리..;;)가 거슬리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선 언론인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이 녹아있어 의약분업 사태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아쉬운 점은 의약분업 사태가 핵심 논거인만큼 당시 사태의 진행 과정과 각 국면의 쟁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줬으면 좋았겠다는 것. 물론 책 자체가 의약분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의사 집단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 지배계급의 타락상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어휘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고귀한 자들의 의무 라는건데.. 솔직히 소위 "노블리스"(인용부호가 필요한 단어다)들에게 그에 따른 의무씩이나 요구할 엄두도 나지 않으니, 제발 보통 사람들만큼의 양심이라도 갖췄으면 좋겠다.

ps. 한울의 책은 여전히 비싸다 -0-

August 29, 2002

천상의 두 나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정영문 옮김/예담/9800원

음.. 책 읽는 페이스가 조금 느려진 듯.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1935년을 전후해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며 쓴 여행기이다. 서양인의 눈으로 동양을 바라보는만큼 선입견에 의한 왜곡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동양을 동등하게 때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존중받을만 하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과 일본을 서술하는 작가의 문체(라기엔 원서를 직접 읽은게 아니라 이해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의 차이. 1935년의 중국은 부패한 국민당 정부가 다스리고 있고 아직 혼돈스러운 시기다. 하기에 카잔차키스의 글 역시 다분히 (아편에 취한 중국인처럼) 몽환적이며 관념적이고, 퇴락한 옛 문명에 대한 쓸쓸한 상념이 지배적이다. 그의 눈은 주로 과거로 향한 셈.

반면 일본에 대한 묘사는 매우 현실적이다. 산업화의 일로를 달리며 군국주의적 사고를 강화시키고 있던 일본에서 작가가 보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일 수밖에. 당시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자신들의 아시아 침략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나기도.

새로운 문화를 이해한다는건 (카잔차키스처럼) 매우 꼼꼼한 시선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지난 여행에서 자연경관만을, 피사체로서의 여행지만을 바라본 것에 대해 후회하는 중. 국내여행이라는 탓도 있었겠지만, 중요한 건 여행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 배우고, 이해하자.

August 30, 2002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 지음/성귀수 옮김/문학세계사/6800원

아멜리 노통의 최근작. 그녀의 열번째 장편소설이다.

충격 그 자체. <오후 네시>를 떠올리게 하는 불쾌한 불청객에서 출발해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으로 이어지다. 섬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심리 소설의 정수..라고 과찬을 해 본다 -_-;

책도 얇고 하니, 까페에 앉아서 2시간 정도 피서용으로 읽기에 최고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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