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파울로 코엘료 지음/이상해 옮김/문학동네/9,500원
"미쳤군"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했을 때, 난 이렇게 중얼거렸다. 권태 때문에 죽다니, 저런 지독한 사치가 어디 있을까. 하긴, 그리 놀라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세 유럽 귀족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자살이 유행했다지. 창백한 얼굴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폐결핵에 걸리고 싶어했다는 귀족 아가씨들도 있고... 아, 그러고 보니 소설『키리냐가』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살이 유행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며 적당히 먹고 살만하고, 적당히 결혼해서 적당히 애들 낳고 살다가 죽는 인생을 차라리 포기한 젊은이들.『키리냐가』의 제사장은 자살을 꿈꾼 젊은이들을 안전한 마을에서 내쫓아 들짐승에게 생존 자체를 위협받으며 살아가도록 하는 처방을 내렸었지.
그 제사장의 처우가 적당했는지는 여기서 논할게 아니다. '자살'이 핵심 논점도 아닐뿐더러, 이건 어디까지나『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서평이니까. 어쨌든 난 "미치다"의 2번 의미(화면 하단의 박스 참조)를 베로니카에게 적용시켰다. 아무리 철부지 아가씨라고 하지만 고작 권태 때문에 삶을 포기하다니, '일반적 상식이나 도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가? 정말 미쳤다고 할 수밖에.
어라? 그런데 약을 먹고 의식을 잃은 베로니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천국이 아닌 정신병원이다. 자살 미수?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당장의 죽음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그 결과로 일주일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 사실 실패하지 않은 셈이다. 다만 레테의 강을 건너면서 잊어야 할 삶의 기억이 일주일 늘어났을 뿐. 문제가 있다면 삶의 그 마지막 일주일을 정말로 '미친'(1번 의미) 사람들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치다?
여기서 잠시 미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우리가 '미쳤다'라고 지칭하는 대상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산발한 머리에 소복을 입고 초점 없는 눈으로 입을 헤~ 벌린 채 들판을 뛰어 다니는 사람? 이런 사람을 미쳤다고 하는건 맞지만, 미친 사람이 꼭 이런 사람은 아니지. 그렇다면 소위 '정신 이상자'들을 말하는건가?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정신 이상'의 범위가 너무 넓다. 자폐증, 편집증, 조울증, 정신 박약, 신경 쇠약 등등.. 이 중 일부는 미쳤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편집증이나 신경 쇠약 같은 증세들은 미쳤다고 말하기엔 좀 부적절한 듯 싶으니까. 그렇다면 '미쳤다'라는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거지?
"미쳤다는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
학술적이거나 엄밀한 정의는 아니지만, 일단 이 정도로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미친 사람들.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 사이에 뛰어넘기 힘든 장벽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제8요일』이나『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았다면 이해가 빠를 듯.
여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단절'이다. 물질적으로는 공존하는 두 존재가 서로 간에 소통의 끈이 모두 끊어져 버린 상태. 문제가 '소통'에 있다는 것, 이것은 광기의 원인이 온전히 물리적 차원 - 예를 들어 뇌에 어떤 손상이 생겼다던가, 혹은 소설 속의 의사가 설명하듯 아메르튐이라는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어서라던가 - 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미친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인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켜버린 사람이다. 대신 자신만의 세계에 안주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 하기에, 광기의 치유가 그 개인에 대한 격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해있던 주변 환경 속에서 집단적 치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미친 척
물론 이 소설은 광기의 원인과 치유법에 대한 이론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저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느냐고? 그건 바로 정신병원의 '단절'이라는 특징이 베로니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베로니카는 정신병원에서 두 부류의 환자들을 발견한다. 정말 미친 사람들과 단지 미친 척 하는 사람들. 정신병원에 정말 미친 사람들이 있는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미친 척 하는 사람들은 또 뭔가?
'형제 클럽'으로 불리우는 이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사회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돌아가 봐야 이전에 자신을 억눌렀던 것, 즉 광기의 원인이 되었던 것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세상이 주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곳에 갇혀 지내는게 마음 편하다고 판단한 것. 싫은 사람에게 애써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애써 볼 이유도 없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입을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니까.
'단절'은 이처럼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여되었던 모든 것들로부터의 단절이기도 하다. 아무도 미친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이 수행하고 있던 역할에 의해 평가받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자아의 해방.
해방적 상황(?)은 베로니카 역시 조금씩 변화시킨다. 침대에 누워 지난 일을 떠올리던 베로니카는 자신이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던 일을 생각해내고 병원 강당으로 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친 것은 오직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조금 자라서는 피아노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위해서 건반을 두드리겠는가? 적막한 고요와 뿌연 달빛, 그리고 그 속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의 선율.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며칠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미치자!
더 이상 책의 내용을 쓰는 것은 영화『식스 센스』의 마지막 10분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격이므로 그만두자.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베로니카는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욕망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 애초 그녀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기억해보자. 삶의 권태. 그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진 삶. 꼭두각시 인형에게 삶의 즐거움이 있을 리가 없다.
우리 대부분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기 검열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기대와 세상의 이목 등에 스스로를 맞추어 나가는 것. 물론 개중에는 능력이 뛰어나 그런 기대와 질서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실상 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는 고백을 접하는 일이 많다. 가족의 기대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만한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그 삶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셈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가능성을 미리 한정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에 우리는 한번씩 미쳐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좀 더 순수한, 본연의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쁜 아이가 될 지언정, 다른 이의 삶을 살수는 없는 거니까. 혹시 아는가. 지금 이 세상이 미쳐있는 것이고, 미쳐 버림으로써 비로소 안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좋은 책을 선물해 준 linus에게 깊은 감사를.
미치다 동사 (자) ①(사람이)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돌다. 실성하다. ¶ 그 여자는 실연의 충격으로 끝내 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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